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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불교계 독립운동가, 얼마나 알고 있는가?(불교신문 광복절 특집)   2017-08-16 (수) 14:36
글쓴이 산도사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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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라는 역사적 암흑기 속에서도, 한국불교는 선각자들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민족과 독립에 대한 지조를 잃지 않았던 스님들은 3·1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등 1945년 8월15일 해방 때까지 항일투쟁에 앞장섰다. 전국의 주요 사찰들도 독립군 근거지 및 연락처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관련 기록이나, 회고, 증언 등을 적극적으로 남겨놓지 않아 그 전모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본지는 광복절을 맞아, 각 시기별로 주요 인물을 중심으로 교계 독립운동이 어떻게 전개됐는지 살펴보고 향후 과제를 짚어봤다. 

일제는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탈한 직후부터 한국불교를 철저히 관리하고 통제했다. 1911년 식민통치 도구로 사찰령을 제정해 재산권과 인사권을 총독부가 장악했다. 민족정신과 사상에 불교의 영향력이 상당했기 때문에, 저항세력으로 등장할 수 없도록 사전에 차단한 것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불교는 낙담하거나 좌절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국권상실 직후부터 교계는 독립운동에 나섰는데, 제주 지역 스님들이 주도한 제주 법정사 항일항쟁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3.1운동보다 약 5개월 앞선 1918년 10월 제주 서귀포 중문지역에서 법정사 주지 김연일 스님 지휘아래 강민수, 강수오, 김산만, 장임호, 최태유 스님과 일반 민중 등 700여명이 무장봉기해 일제를 축출하려 했던 대규모 무장투쟁이었다. 일본 주재소를 습격하고 일본 경찰을 응징하는 등 항쟁의 파장은 엄청났다. 향후 법정사 항일투쟁으로 국가로부터 포상을 받은 독립유공자가 27명인데, 현재까지 전체 유공자 84명 중 3분의 1의 비중을 차지하는 점을 감안하면, 항일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한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교계 항일투쟁은 1919년 3·1운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면서부터 본격화됐다. 용성스님과 만해 스님은 전국적이며 거족적인 3·1운동에 중심역할을 수행했다. 이 스님들이 서울을 거점으로 불교계를 대표해 독립 운동에 펼쳤다면 지방학림을 중심으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끈 이는 최범술과 김법린 선생이다.

이들 영향으로 중앙학림에 재학 중이었던 학인들은 거사 당일 수 천 매의 독립선언서를 배표하는 일을 도맡았다. 또한 각 연고 사찰에 조직적으로 파견돼, 독립선언서를 비밀리에 전달, 인쇄했다. 지방학림의 학승들과 연합해 사찰 혹은 연고지를 중심으로 만세시위도 주도했다. 그 결과 범어사와 해인사, 통도사, 동화사, 김용사, 마곡사, 쌍계사, 화엄사, 선암사, 송광사 등에서 스님들과 주민들이 주도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김영규, 김재호, 김한기, 양수근, 윤상은, 지용준, 황만우 등 범어사 만세시위에 참여했던 12명의 범어사 출신 스님들이 포상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김봉률·박달준·오학성 등 해인사와 통도사 학승을 포함한 총 30명이 3·1운동 관련 포상자에 들어있다.       

 3·1운동 이후에도 항일투쟁은 지속됐다. 특히 백초월 스님은 용성·만해스님 등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스님들이 수감되자, 중앙학림 내 한국민단본부라는 비밀단체를 조직해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전국 불교도 독립운동본부 격인 이 단체를 이끌며 지하신문인 ‘혁신공보’를 제작 배포하고 군자금 모집, 임시정부 후원 등 다양한 활동으로 일제에 맞섰다. 독립운동 혐의로 합천경찰서에 연행돼 고초를 겪고 옥사(獄死)한 해인사 고경스님도 시대의 선각자였다. 스님은 대표적 친일승려인 강대련(姜大連)을 경성 한복판에서 명고축출(鳴鼓逐出)한 조선불교유신회에 참여해 조선독립운동에 깊이 관여했다.

3·1운동의 산물로 등장한 상해 임시정부의 수립(1919년 4월)과 활동에도 스님들이 대거 동참했다. 김법린, 김상호, 백성욱, 신상완, 이석윤, 김상헌, 송세호, 백초월, 정남용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국내 불교계 인사를 상해로 망명시키고 군자금 모집, 항일자료 이송, 특파원 파견 등을 수행하며 항일투쟁의 일선에서 활약했다.

1930년대 이후에도 교계 독립운동은 끊임없이 추진됐다. 이 시기 중국 관내지역이나 동북지역으로 이동해 활동했는데, 운암 김성숙과 이운허 스님이 대표적이다. 특히 김성숙 선생은 1930년 중후반기 조선민족해방동맹, 조선민족전선연맹 등에서 활동했다. 앞서 3.1운동 당시 봉선사 스님 신분으로 만세 운동을 주도해 서대문 형무소에서 2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와 함께 통도사에서 운영한 통도중학교 교사 조용명은 1939년 이후 창씨개명 반대, 일본어 및 일본연호 사용금지, 역사 부인, 애국지사 순방 등의 활동을 전개했다. 경북지역 5개 본사 사찰이 설립한 오산학교에서는 일본군 입대거부, 독립운동가와 연락 도모를 결의한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처럼 대일항쟁기 교계 민족운동은 의식 있는 선각자들에 의해 끊이지 않고 펼쳐졌다. 하지만 이를 증명할 자료발굴이 어려워 독립운동의 전모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최근 불교사회연구소가 연 학술세미나에서 일제강점기 교계 독립운동 관련 유공포상자는 총 84명인 것으로 집계됐지만, 더욱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행적을 발굴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다. 일제하 불교 독립운동에 대한 연구는 최근 몇 년 사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고, 의미 있는 성과도 나오고 있지만, 아직까지 미개척 분야라는 지적이다. 전체 포상자 중 70명 이상이 국내 항일과 3·1운동 분야에 치우쳐 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런 가운데 불교사회연구소가 오는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백주년 기념사업 연구위원회를 구성하고 일제강점기 불교항일운동을 망라하는 연구를 진행키로 해 결과물에 관심이 쏠린다.

김순석 한국국학진흥원 박사는 “불교의 임시정부 지원활동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독립자금 지원에 관한 것”이라며 “이에 대한 내용, 액수, 전달방법 등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정리가 거의 없어 구체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또 “불교계의 3.1운동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며 “지금까지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불교계 독립운동가들의 행적을 발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다영 기자  hong12@ibulgyo.com

2017 불교중앙박물관 개관 10주년 특별전 
선암사 성보 2017 불교중앙박물관 특별전 출품